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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리하며 만난 따뜻한 과거사

사도마루 2008. 9. 3. 16:57

1988년부터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해 왔더니 

이젠 파일들이 하도 많아 필요한 파일조차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며칠전부터 지금까지 만들어진 자료들을 대규모 저장 매체인 DVD에 

작성연도별 내용별로 분류하여 정리를 하고 있다.

정리하면서 잊어버렸던 여러 가지 소중한 일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다음 글은 파일을 정리하면서 건져낸 소중한 기록 중의 하나이다.

2004년 2월에 쓰여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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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토요일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청에서 일을 마치고는 오후 2시 반, 약속 장소인 동부 정류장에서

함께 갈 친구들을 만나 버스를 탔다.

방학 때면 만나는 대학 동기 모임이 이번엔 포항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는 안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안사람이 버스를 탔느냐고 물었다.

탔다고 했더니 조심해서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포항에서 친구들을 만나 과메기와 회를 먹고는 노래방에 가  밤늦도록 놀았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대학 동기들이라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다시 한 학기를 살아갈 에너지들을 가득채웠다.

 

 

   18일 일요일

 

아침에 포항을 출발하여 12시 경에 대구에 도착했다.

숙직일이라  일을 하다가 숙직 교대를 해줄려고 마음먹고는 청으로 바로 들어왔다.

청에 도착한 다음 바로 집에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사람 휴대 전화로 잘 다녀왔다며 전화를 했더니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을 겸 집에 다녀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약간 좋지 않아 가톨릭 병원에 와있다고 했다.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계셨다.

토요일날 아침에 경로당 가시다가 쓰러져 119 도움을 받아 입원하셨다고 했다.

내겐 말도 않고, 입원 수속 밟고 밤을 새며 간병했던 것이다.

바로 연락하지 그랬다고 원망했더니 모처럼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마음 편히 쉬고 오게할려고 연락하지 않았댔다.

버스를 탔느냐고 물었을 때 타지 않았다면 말을 할려고 했었는데

탔다기에 잘 다녀오시라고만 했다고 했다.

 

다행히 말씀도 분명히 하시고 손발 움직임에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큰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경북대 병원으로 이송하여 입원을 했다.

입원 수속을 밟은 다음 난 숙직이라 청으로 가고 안 사람은 병원에서 어머니 곁을 지켰다.

 

 

   19일 월요일 

 

오후에 시내 전체 유치원 원장, 초중고 교장이 모두 참석하는 대규모 회의가 있어  

관련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에 참석한 후 

병원으로 바로 왔더니 시골에 있는 동생과 형수님이 나와 계셨다.

동생이 오늘 저녁은 내가 있을테니 모두 들어가라기에 

형수님과 조카는 시골로,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20일 화요일

 

아침 일찍  나는 청으로 안사람은 병원으로 출근을 했다.

퇴근 후 안사람과 교대하여 병실을 지키고 있다.

안 사람은 지난 이십 수년간 바쁘다는 핑계로 자식노릇, 아비노릇 제대로 못하는 날 대신해 

내가 바깥 생활에 충실할 수 있도록 늘 이렇게 집안을 꾸려왔다. 

내가 챙기지 못하는 집안 대소사를 두루 챙겨 

집안 사람들로부터 내가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도 늘 아내였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이런 일들을 잘 해주는 아내가 오늘따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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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방의 여친네들도 모두 그렇게 살아왔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더 소중해진다고 하는 것이겠지?

흩어진 글들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몇 년 전 그 감사하던 마음 이렇게 다시 느껴볼 수 없었을 텐데...

덕분에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면 안사람 얼굴을 한번 더 가만히 들여다 보며 이마에 입을 맞추어주지 싶다.

그때 편찮으셨던 어머니께서는 그 다음 해 겨울에 여든 아홉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출처 : 52년생 용띠들의 쉼터
글쓴이 : 사도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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