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 김인후 선생을 모시고 있는 호남 제일의 서원 필암서원을 탐방하러 왔다가 인근에 있는 청백리 박수량 선생의 백비를 찾았다. 백비(白碑)는 명종 임금이 청백리(淸白吏) 아곡(莪谷) 박수량(朴守良) 선생에게 하사한 비석으로 글자가 한 자도 새겨지지 않은 돌비석이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33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93호이다.
아곡 박수량 선생(1491~1554)은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다섯 임금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퇴계 선생(1501~1570)이 태어나기 10년 전에 태어나 퇴계 선생이 고향으로 물러나 계상서당을 짓고 제자를 기를 때에 돌아가셨으니 퇴계 선생과 비숫한 시대를 조금 앞서 살다가신 어른이다. 좀 더 비슷한 세상을 살다 가신 어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과 두 번째 서원을 세워 서원교육을 출범시킨 신재 주세붕 선생(1495~1554)이다. 신재 주세붕선생은 아곡선생보다 네 살 아래이며 명종 6년(1551년) 박수량, 퇴계 등과 함께 염근리로 녹선되었으며 같은 해(1554년)에 돌아가셨다.
아곡 박수량 선생은 1514년 24세의 나이로 대과에 급제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40년 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호조참판[기획재정부차관], 예조참판[교육부차관], 공조참판[국토건설부차관], 형조판서[법무부장관], 한성부 판윤[서울특별시장], 의정부 좌우참찬, 함경도와 전라도 관찰사 등 높은 관직을 두루 거친 고관이었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며 높은 벼슬을 두루 지낸 고위공직자였지만 선생은 한양에 집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할 만큼 청렴하여 염근리(廉謹吏)로 선정되었다. 명종 6년(1551년) 박수량선생과 함께 염근리로 선정된 33인 중에는 박수량 외에도 이준경, 주세붕, 이황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장성평생학습관 자료를 보니 청백리(淸白吏)는 죽은 사람, 염근리(廉謹吏)는 산 사람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선생이 돌아가시자 명종은 정혜공(貞惠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貞)은 '청렴결백했다'는 청백수절(淸白守節)에서, 혜(惠)는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이 친부모처럼 따랐다'는 애민호여(愛民好與)에서 따온 시호였다.
명종 임금은 시호만이 아니라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비석까지 내렸다. 하지만 그 비석은 글자 한 자 새기지 않은 백비였다. '선생의 청백함을 새삼 비에 새기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함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고 하여 백비를 내린 것이다.
선생은 아들에게 '묘도 크게 만들지 말고 시호도 받지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소 봉분은 별로 크지 않으며 석물도 아주 검소하고 조촐하다. 그 당시 무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작은 양 모양의 석상조차 없다. 아마도 자식들은 시호도 사양했을 것이나 임금이 정혜공이라는 시호를 내리니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곡 선생이 살다간 시대는 바로 1498년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화, 1519년의 기묘사화, 1545년의 을사사화 4대 사화가 모두 일어났던 파란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39년 간이나 고위 공직자로 살아오면서도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청렴 덕분이었을 것이다.
자손들이 선생을 한양에서 고향 장성으로 운구할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하자 임금이 장례를 지원해 주었으며, 자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선생의 고향 아치실마을에 99칸의 집을 지어 청백당이라는 당호까지 내려 주었다. 청백당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지고 그 터에 청백당 유허비만 남았다.
장성아카데미로 유명한 장성군에서는 최근 선생의 청백리 정신을 본받자며 군청에 백비모형을 설치하고, 홍길동테마파크 내에 있는 청백당 유허비 근처에 청백당이란 한옥을 건립했다. 필암서원을 찾아왔다가 우연히 마주한 정혜공 아곡 박수량 선생의 백비와 장성군의 이런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더 밝고 깨끗한 투명한 사회로 거듭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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