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동부교육장(2013~2014)

천재소년 원복수의 삶과 자유학기제의 필요성

사도마루 2014. 6. 19. 00:45

 

 

  이번 6.4지방선거에서 군수로 피선된 친구의 사진이 필요해 서가 안쪽 깊숙한 곳에 꽂혀 있던 중학교 졸업 앨범을 펼쳤다. 퇴색된 졸업 앨범 속에서 소중한 보물들이 쏟아져나왔다. 50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반 친구였던 원복수가 내게 그려준 그림들이다.

 

  중학교 1학년. 그 어린 나이에 만화를 기가 막히게 잘 그렸던 원복수는 쉬는 시간이면 A4 용지에 쓱쓱쓱 그림을 그려 내게 주곤했다. 그냥 쓱쓱쓱 그려준 그림이지만  친구의 손끝에서 나온 그림들은 내게 신기하기 짝이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 그림들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내 공간 한 곳에 갈무리되어 있었다. 사람도 물건도 함부로 잘 버리지 않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친구의 그림이 그만큼 멋진 작품이요 보관할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65년 2월. 함양군 동단 도북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이십리 거리에 있는 면단위 중학교를 가지 않고 삼십리 떨어진 군단위 읍내학교로 진학을 했다. 당시 함께 국민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도 하지 못했고 진학한 아이들조차 가까운 수동중학교나 안의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나혼자 읍내 학교로 진학을 한 것이다. 함양중학교  운영위원장을 지낸  큰형님께서 함중 진학을 권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년은 6개 반으로 편성되었는데 나는 1학년 2반이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오신 이인호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던 우리 반에는 함양초등학교 전교학생회장을 지낸 노창남이가 실장을 맡아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었다. 읍내 아이들이 볼 때 나는 골짝 중의 골짝 도북골의 촌놈이었다. 산골 촌놈이었지만 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학급 회계를 맡았으며 도북국민학교 전교학생회장, 씨름 선수, 축구 선수 출신으로서의 자신감과 당당함, 무엇보다 영어 선생님께서 다른 반 수업에 가서까지 내 이름을 거명하며 가처럼 공부하라고 아이들을 독려했기 때문에 급우들은 나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주었다. 원복수도 그런 나를 인정해주었고 나도 그림을 귀신같이 잘 그리는 복수를 존중해 주었다. 밝고 다정한 친구였지만 다소 내성적이었던 그는 자기 그림을 좋아하며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내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건네주곤했다. 아래 사진들은 중학교 앨범 속에 들어 있는 원복수의 사진과 1학년 때 그가 내게 그려준 그림들이다.   

 

 

      

 

 

 

 

 

 

 

 

 

 

 

 

 

 

 

 

  한마디로 원복수는 그림의 천재였다. 중학교 1학년의 손끝에서 그려져 나오는 그림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그림들이 그냥 그려져 나왔다. 그동안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원복수는 진주에서 수퍼마켓을 하며 산다는 소식만 풍문으로 들었을 뿐 만나지 못했다. 매년 열리는 중학교 동창회에도 나오지 않아 만날 수가 없었다. 이런 천재가 그 천재성을 살리지 못한 채 그냥 수퍼마켓이나 하면서 살고 있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그때 우리 어릴 적에는 아이들의 진로나 적성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했을 뿐이다. 나도 공부를 꽤나 잘 했지만 실업학교인 한양공고 전기과로 진학했다. 전기 공부를 하다가 친구들과 죽이 맞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 누군가가 진로를 안내하고 지도해주었더라면 내가 돌아온 그 먼 길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복수 역시 그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안내받거나 지도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천재성을 누군가가 잘 안내하고 지원해주었더라면 아마도 우리 미술계나 만화계에 거목으로 성장하여 이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온 길이나 원복수를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유학기제 도입이 늦었지만 정말 우리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중학교 다니는 동안 어느 한 학기를 시험의 부담 없이 여러 직업세계를 탐색하고 체험하면서 장래에 자신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지 고민해 보고 고등학교 진로 결정, 대학진학이나 취업 준비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바로 자유학기제운영의 기본 취지이기 때문이다. 천재성을 타고 났으면서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사장시켜버린 원복수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없기를, 자라나는 학생들이 나처럼 인생을 돌고돌아오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되기를 염원하면서 자유학기제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는데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