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2014년 3월 24일)에는 '국채보상체험학습' 제10집 발간을 위한 원고를 썼다. 어떤 글을 쓸까 하다가 국채보상운동에 비견할 만한 김울산 여사의 육영사업과 사회사업의 현창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원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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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울산 여사의 육영사업과 애국단심 현창 염원
대구광역시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권충현
우리 대구와 경북은 한국근현대사에서 국난 극복과 국가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랑스러운 곳이다. 애국탁본체험지도위원회의 노고를 통해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알고, 느끼고 감동했을 바로 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곳이 우리 대구요, 6.25 전쟁 중 낙동강 방어선 사수로 승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도 바로 우리 대구였으며, 자유민주주의의 정기가 흐려질 때 어린 고교생들이 분연히 일어나 민주주의의 대의를 지켜낸 곳도 바로 우리 대구였다. 우리 대구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며 그 사실들을 기억하고 널리 현창하고자 시내 중심가 가장 좋은 땅에 국채보상공원과 2.28 기념공원을 조성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수호를 위해 불꽃처럼 스러져간 다부동 현장에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여러 가지 관련 행사들을 성대하게 추진하고 있다. 우리 후인들 모두가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고 감사하고 기리는 가운데 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만들어 갈 동력이 생긴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활동을 선도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런 활동을 보면서 우리가 잊고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선각자가 한 분 계시기에 이 귀한 지면을 빌어 소개하여 현창하고자 한다. 바로 요즘 우리 대구교육청에서 현창사업을 추진 중인 김울산 여사의 공적과 기여 사실이다. 우리가 국권을 침탈당하던 시기에 그리고 일제의 압제 하에 있던 그 암울한 시기에 벽오동 나무를 심고 봉황이 와서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키우며 조국광복을 염원했던 선각자 김울산 여사의 육영사업과 이재민을 구휼하는 데 거금을 쾌척했던 사회복지사업은 재평가되고 현창되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다.
김울산 여사는 울산에서 태어나 열여섯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대구사람과 결혼했으며 열아홉에 청상이 되고 관기가 되었던 불우한 여인이었으나 정미소와 술집 경영으로 많은 돈을 벌어 1900년 지금의 종로초등학교의 전신인 희도학교 설립 당시에 이미 거금을 기부하고 그 이후에도 대남유치원 설립, 명신소학교 설립 등에 자금을 대어 학교 설립을 도왔으며 명신소학교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71세의 나이에 자신이 가진 거의 전재산을 투자하여 학교를 인수하고 땅을 사 교사를 신축하여 복명학교를 설립했으며 매월 300원 가량의 학교운영비까지 지원했다. 논 300두락을 학교운영비 지원을 위해 희사했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가 있고, 2013년 우리 대구시교육청에서 숨은 재산 찾기를 통해 유가지역에서 김울산 여사 명의로 희사된 세 필지의 땅을 찾아 낸 것으로 보아 거금을 들여 학교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안정적이고 지속적 운영에 필요한 재정지원 방안까지 마련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김울산 여사는 고향이 울산이라 김울산이란 이름을 썼었으나 복명학교를 설립하고부터는 이름까지 김복명으로 바꿨다. 복명(復明)은 바로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김복명 여사의 애국단심이 깃든 교명이었다고 생각된다. 복명학교를 인수하고 교사를 신축하여 새롭게 출발한 1925년과 1926년은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목숨 걸고 갈망하던 1919년 삼일만세운동의 정신이 조선 민중의 가슴 속에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기였다. 물론 일제의 탄압 역시 가혹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소설 은실이를 보면 김울산 여사의 복명학교 재단 사무실은 독립운동가들의 아지트 같은 곳으로 일본 헌병대의 감시가 집중되던 곳이었다. 그런 시기 그런 상황에서 김복명 여사는 벽오동을 심고 조국광복에 도움이 될 인재 육성에 필생의 재산과 정력을 쏟아부었다.
김울산 여사는 인재육성을 위한 육영사업 외에도 이재민 구휼, 상습 수재지역 방천 사업 지원 등 방재사업에까지 거금을 희사한 사회사업가였다. 2차 대전과 6.25 그리고 전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김울산 여사의 육영사업에 대한 기여도, 이웃을 위한 기부도 묻혀지고 잊혀졌으며 지금은 학교에 희사된 땅들조차 모두 다른 사람들 소유로 넘어가고 없어져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퇴락한 비각 안팎에 서 있는 소작인들이 세운 공덕비 두 개와 훼손된 산소 밖에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민망스럽다. 그 어른이 이 세상에 베푼 공덕과 기여를 생각하면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근현대사의 민족운동으로 칭송하면서 대구 도심 한 복판에 큰 기념 공원까지 조성하여 자랑스레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모금한 돈이 13만원이었는데 김울산 여사 한 사람이 육영사업과 사회사업을 위해 쏟아 부은 돈이 20만원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김울산 여사에 대한 재평가와 현창 사업이 범시민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되며, 우리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김울산 여사 현창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우리 대구 시민의 가슴에 국채보상운동, 2.28학생의거에 더하여 또 하나 찬란한 자랑거리가 더하여 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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