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일.
오후 4시. 복명초등학교 방문.
대구광역시 동부교육지원청이 있는 이 자리는 본래 복명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이 곳은 선각자였던 김울산 여사의 조국 광복을 향한 염원과 인재 양성을 통한 국권회복 소망이 스며있는 역사적인 땅이니 대구교육계의 성소라 할 수 있다.
1895년 초 고종께서는 교육조서를 반포하고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백성 교육을 통하여 바로 세워보고자 했다. 그러나 정한론으로 무장한 왜놈들이 황후를 시해하고 국권침탈을 위해 암약했으며 러일전쟁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한 주도권을 잡자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정미7조약, 1908년 학교령 등을 통하여 조선 침탈을 공공연히 추진해 나갔다. 이때 즈음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인재육성을 통해 넘어가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이때 세워진 학교들 중의 하나가 1900년 개교한 명신여학교였다. 장한 뜻으로 세워졌으나 명신여학교는 운영난으로 원만한 학교 운영이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1925년 김울산 여사가 명신여학교를 인수하고 거금을 들여 아미산 위 지금의 동부교육지원청 자리에 당시로서는 최신식 건물로 학교를 신축했다. 그 후에도 매월 300원 가량의 학교 운영비를 지원했으며 학교운영을 위해 현풍 등지의 300두락 논까지 희사했다.
2차 대전과 6.25 그리고 전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김울산 여사의 그런 통큰 지원도 묻혀지고 잊혀졌으며 지금은 학교에 희사된 땅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 소유로 넘어가고 없다. 작년에 시교육청 재정팀이 현풍에서 자투리 땅 세 필지를 찾았다니 300두락의 땅을 학교 운영을 위해 희사했었다는 그 당시 신문 기사 내용이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고인의 큰 뜻이 세월 속에 묻혀지고 잊혀진 것이 너무 아쉽다.
김울산여사의 장한 뜻이 어려있는 바로 그 땅을 받아쓰고 있는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온 내가 이 사실을 인지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부임하고 얼마되지 않아 등청을 하는 데 마침 아침 운동을 하고 있는 노인이 있어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건네며 교육장이라고 내 신분을 밝혔더니 운동을 하다 말고 이곳은 김울산 여사가 세운 복명학교가 있던 곳으로 김울산 여사가 계실 때부터 있던 나무가 있다고 했다. 이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김울산 여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를 찾았더니 캐면 캘 수록 더욱 대단한 어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곳에 김울산 여사를 기리기 위한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2014년도 예산을 세울 때 표지석 건립비로 5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예산이 시의회를 통과하고 2014년도가 시작된 지난 1월 16일 행재정팀 직원들과 덤불우거진 조야동 함지산을 올라가 폐허가 된 김울산 여사 산소를 찾아내고 참배했다.
산소는 봉분도 사라지고 없고 망두석은 누군가가 일부러 부수어 버려버린 듯 산소 인근 땅 속 이곳저곳에 묻혀 있었으며, 산 아래 세워진 공덕비 비각은 훼손되어 곧 넘어질 것 같았다. 우리가 세운 예산은 우리 교육청 안에 김울산 여사 기념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울 요량으로 세운 500만원이 모두인데 비각을 수리할려고 견적을 뽑아보랬더니 5000만원 내지 1억이 소요된다고 했다. 우리 교육지원청 힘만으로는 도저히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 시청에 도움을 청했다. 문화재가 아니라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북구청에도 알아보았더니 이런 일을 위해 세운 예산이 총 90만원 밖에 없다고 했다. 잘 하든 못 하든 결국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정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대안들을 모두 찾아보게 했다. 산소 봉분을 짓고 벌초를 하며 매년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드린다는 것에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퇴락한 비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안이 제시되었다. 유력한 안은 거금을 들여 비각을 중건하는 것은 어려우니 비각을 없애고 공덕비만 우리 교육청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작인들이 1934년 그곳에 공덕비를 세웠고 1944년 돌아가신 김울산 여사가 그 뒷산에 잠들었는데 공덕비를 우리 청으로 옮겨 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옮겨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보게 했다.
대구은행 내 그린나래 식당에서 2월 10일 새벽에 열린 2월 조찬 정책협의회 자리에서 김울산 여사의 장한 교육기부사업과 복명학교 관련 공적을 제기하고 교육감님께 그 장한 업적을 현창하자는 건의를 했다. 교육감님께서는 나의 이 제안을 듣고는 "우리가 교육기부사업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그런 큰 도움을 준 어른이라면 현창하는 게 당연하다. 1억이 들더라도 추진합시다"며 적극 동조해 주셨다. 어렵던 일이 교육감님의 적극적인 동조로 강력한 추진 동력을 얻게되었다.
그동안 우리 청에서는 김울산 여사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산소가 있는 산과 비각 주변 땅의 소유주들을 탐문하여 접촉을 시도해 왔었는데 교육감님의 적극적인 동조와 지원을 받게 되자 시교육청 차원에서의 추진 방안이 강구되고 축적된 자료들을 시교육청과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김울산 여사 현창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내일(2014년 3월 5일)은 교육감님이 직접 김울산 여사 산소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나는 행정국장과 초등과장인 창의인성과장을 대동하고 오늘 미리 지산동 복명초등학교를 가보기로 했다. 거금을 들여 복명학교를 세우고 조선의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한 김울산 여사를 기리기 위해 당시 뜻있는 사람들이 세워준 동상이 복명학교 이름을 이어받은 복명초등학교 교정에 보존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복명학교 교정엔 김울산여사의 흉상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김울산 여사의 장한 덕업을 기려 1937년 당시 대구 지역의 사회 지도자들이 합심협력하여 좌상 동상을 건립하여 헌정했었는데 2차 대전 말기 일제가 징발해 가버리는 바람에 청동상은 없어지고 대신 돌로 만든 흉상이 지금 우리 동부교육지원청 자리인 옛 복명학교 교정에 세워졌었다고 한다. 김울산 여사의 석상은 복명학교가 현재의 지산동으로 이전되면서 함께 이건되었다.
나의 방문을 알고 학교측이 관련 자료를 모두 준비하여 브리핑을 잘 해주었다. 복명학교에 김울산 여사와 관련된 기록과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자료들을 보면서 복명학교가 현재는 느티나무를 교목으로 정하고 있지만 김울산 여사가 계실 때는 벽오동 나무를 교목으로 정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벽오동은 열매 때문에 봉황이 깃든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나무 아닌가. 복명학교에 조국광복을 위해 도움이 될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란 김울산 여사의 바램이 깃든 교목이었으리라. 김울산 여사 당대에 있던 나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청에서 가장 오래된 듯이 보이는 후문의 가죽나무가 김울산 여사 당대에 심겨진 나무가 아닐까 하여 그 가죽 나무를 김울산여사 나무로 명명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복명학교에서 옛 교목을 알고는 벽오동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어둠이 내린 6시 30분. 학교를 나와 곧장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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