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여중고(1980)

제주에서의 해후

사도마루 2013. 8. 12. 17:21

 

해후(邂逅)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사람들이 우연히 만난다는 말이다. 2013년 8월 9일 제주도 시외버스 정류장을 막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34년 전의 제자를 우연히 만났다. 여름 보충수업이 끝나고 개학하기까지 며칠 간의 틈새를 이용해 대학입학동기들과 만남 40주년 기념여행을 온 제주에서 말이다. 말 그대로 해후였다.

 

 

34년 전 사대를 갓 졸업하고 울진여중에 발령을 받아 담임을 맡고 내 생애 첫 제자들을 맞았다. 첫 담임을 맡은 새내기 초짜 교사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남아 영어속담을 외우게 하거나 쪽지 시험을 보며 교육환경이 열악한 시골 아이들의 학력향상을 위해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었다. 그때 내 반 아이 중에 오래지 않아 대구로 전학을 간 학생이 있었다. 강진영이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고 자기 주장이 분명하며 친구들 앞에서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학생이었다.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몸매가 갸날프고 얼굴이 계란형인 젊은 여인이 '선생님' 하고 불렀다. 나와는 무관한 부름이라 여기며 그냥 앉아 있는 데 "권충현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자세히 바라보았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진영이예요." 했다. 그래도 얼굴이 낯설었다. 내가 아는 진영이는 보름달 같은 얼굴의 학생이었는데 전혀 다른 얼굴의 여인이 진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그 진영이가 맞았다. 34년의 세월은 이렇게 사람의 외형까지 변하게 만드는 오랜 세월이었다.

 

 

마침 가는 방향이 같아 성산일출봉 아래 도착하여 전복과 소라를 안주삼아 우도땅콩막걸리를 한 잔 하며 지나간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그때 여러 제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화도 하여 목소리도 듣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이수미가 연결되었는데 아이들이 네 명이라며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들이라고 자녀들 사진까지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눈썹이 짙고 얼굴선이 분명한 아들은 마치 배우 같았다. 

 

 

부부들과 함께 떠난 대학 동기 만남 40주년 기념 제주여행에서 34년 전의 제자를 만나고 서울에 있는 제자와 통화를 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제주는 이래저래 낭만의 섬이요 추억의 섬이었다.

 

 

 

# 내 기억 속의 진영이는 34년 전 전학 가던 날 찍어둔 사진 속의 바로 이 얼굴이다.  

 

 

 

# 소풍 가서 순녀랑 함께 찍은 진영이 사진 

 

 

 

# 수미가 보내온 아들과 찍은 사진

 

 

내 기억 속의 수미 모습. 우리 반 서기였던 수미는 갸날픈 외모와는 달리 항상 책임감이 강하고 긍정적이며 매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학생이었다. 학급일지를 적을 때도 글자 한 자 그냥 흐트러지게 쓰는 일이 없었다. 항상 단정하고 이쁜 글씨로 정성껏 내용을 기록했다.

 

# 등나무 앞에선 금순이, 수진이, 수미

 

 

 

 

운동회 날 다른 반이 하지 않는 피켓까지 만들어 단합을 과시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새시대의 극성부인 후보들" 그 피켓 내용처럼 우리반 아이들은 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의 좌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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