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3.2.
1979년 3월 1일자로 울진여고에 발령을 받아 34년 간 교직에 봉직한 안사람이
2013년 2월 28일자로 명퇴를 했다.
퇴임 기념으로 처음 발령 받아 교직생활을 시작한 곳,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배어있는 곳, 울진 여중고를 방문했다.
3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학교는 많이 변했다.
어렸던 등나무는 연륜이 묻어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린 등나무 꽃이 필 때 이 자리에 둘러앉아 꽃향기를 즐기며
젊은 날의 황금기를 함께 했었다.
도희자, 곽경희, 남옥희
남분희, 김선화 선생님
남분희, 박화식, 곽경희, 최정호, 허진일, 나.
작은 나무였던 울타리 소나무는 큰 나무가 되어 있었다.
마사토 운동장이 인조잔디로 바뀌었고 정문도 남쪽으로 바뀌었다.
인조잔디운동장 바깥쪽은 논이었지. 작은 소나무가 성목이 되고 논은 체육관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때 운동장 안에서 본 바깥쪽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때 저 소나무 아래서 체육대회날 우린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모두가 하나 되는 멋진 시간을 가졌었지.
오후에도 남겨서 공부를 시키는 괴짜 담임을 만나
불만이 많았던 학생들이 급기야 교장선생님께 담임 바꿔달라고 진정까지 했었지.
체육대회날 내가 직접 쓴 피켓을 앞에 두고 기념 사진을 찍었었다.
'우리는 새시대의 극성부인 후보들'
지금 보아도 참 당돌한 피켓 내용이다.
10.26 사태와 12.12 사태, 광주 5.18 사태가 일어나던 격동의 시기였지만
사진 속의 우리 모습에선 그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학교 2학년 3반'이라는 피켓에서 그날 체육대회가 여중, 여고 합동으로 열렸고
운동장 둘레 곳곳에 학반이 배치되어 응원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아이들의 교실 좌석 배치표가 아직도 내 사진첩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그때 우리반 학생들이 69명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꼬박 두 반이다.
인조잔디가 깔린 소나무 울타리 앞 공간에는 테니스장이 있어,
일과 후엔 선생님들이 테니스를 즐겼었다.
제주도가 고향인 고한종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엇보다 울진여중과 여고가 함께 있던 여학교였는데
지금은 남녀공학의 중학교로 바뀌었다.
건물도 모두 새로 지었고 조형물도 새롭게 축조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대 후반의 새초롭던 초임교사가 60대 초반의 큰 학교 교장이 되는 동안 학교의 모습도 다 바뀌었다.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학교 건물은 완전히 바뀌어 당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가 찍은 사진 속에서 당시의 건물을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꽃이 있고 나무가 있고 웃음이 있던 그때가 훨씬 더 정겹고 아름다운 배움의 공간이었다.
운동장 울타리로 심겨졌던 작은 소나무가 이젠 이렇게 성목이 되었다.
안사람이 자취를 하던 학교 바로 옆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시멘트 포장 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 서서 30여년 전의 자취방과 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때를 추억했다.
안사람은 스물 세살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향에서 시작한 교직 생활이었지만
아이들과 하나되어 참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한다.
30년 세월도 지나고 보면 어저께만 같은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참 많이도 변했다.
울진에서의 3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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