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은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현의 제사를 모시면서 유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사학기관이었다. 관학인 향교와 다른 점은 대성전을 지어 공자를 배향하지 못하고 특정 선현을 주배향자로 모시고 그 덕망이나 학식 또는 충렬정신을 배우고 계승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명현의 향사와 유생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의 인재 육성과 풍속교화에 중심 역할을 하던 서원은 강한 빛만큼이나 그늘도 커져 종국에는 파당을 형성하거나 백성을 착취하는 폐단이 나타나 1871년에는 대원군에 의해 서원철폐령이 내려졌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는 서원만이 아니라 유사한 역할을 했던 사우까지 동시에 정리가 되었다. 대원군이 서원과 사우를 정리할 당시 조선 8도에 약 1700개소의 서원과 사우가 존재했다고 하니 소수서원 설립 이후 약 300여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서원과 사우가 세워졌는지 알 수 있다. 대원군은 서원과 사우를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정리를 했다.
그 많은 조선의 서원과 사우 중 제일 먼저 설립된 서원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풍기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었다. 소수서원은 1541년(중종 36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1542년 향토출신 성리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이듬해인 1543년 백운동서원을 창건함으로서 시작되었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주청으로 백운동 서원은 1550년(명종 5년) 소수서원이란 이름으로 사액되어 우리나라 사액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소수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 시에도 존치되었다.
두번째 세워진 서원은 1549년(명종 4년) 황해도 벽성군 서석면 서원리에 세워진 문헌서원(文憲書院)이다. 문헌서원은 지방 유림의 공의로 고려 때 학자인 최충(崔沖)과 최유선(崔惟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으며 이듬해인 1550년 문헌(文憲)이란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문헌서원은 대원군 서원 정리 시 훼철되었다.
세번째 세워진 서원은 1552년(명종 7년) 일두 정여창(1450~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고 1566년(명종 21년) 사액서원이 된 경남 함양군 수동면 효리에 있는 남계서원이다. 남계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서원이다.
일두 정여창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1498년(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조선 시대 5현의 수위로 거명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대단한 학식과 덕망을 가진 학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나 사화를 당할 때 관련 자료들이 멸실되어 그의 가르침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깊이 알 수가 없어 아쉽다. 다만 '일두'라는 호는 '한마리의 좀'이라는 의미로 정여창의 겸허한 학문자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유추된다.
함양 지역에서는 남계서원이 우리 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내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1980년대 당시에 한국교육학을 강의하시던 손인수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남계서원을 공부하면서 당시 수집된 부족한 자료에 근거해 서울 함양향우회의 모 유력인사에게 우리 지역의 남계서원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할 때 전국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라고 말씀 드렸던 것이 널리 퍼져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항간에 두 번째 세워진 서원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의 임고서원은 1553년(명종 8년)에 포은 정몽주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되었으며 1554년 임고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임고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원되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사우를 중심으로 본다면 첫번째 세워진 서원이 소수서원이요 두번째 세워진 서원이 함양 수동에 있는 남계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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