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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밭이 된 학교 현장에서 학교장 단상

사도마루 2010. 4. 22. 17:26

교장 자격연수와 관련된 업무차 교원대학교를 다녀왔다.

밤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즐겁고 활기차게, 그리고 여유있게 

전국 곳곳의 학교경영 정보를 공유하던 우리 연수 때와는 판연하게 다른 분위기를 보고 왔다.

교장 자격연수를 받아도 교장으로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정에도 없던 교장자격연수 추가 연수가 추진되고 있으니 

마음 편히 낭만을 즐기며 연수를 받을 겨를이 없다고 한다.

교장 초빙 심사에서는 연수 성적도 반영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연수를 받고 있는 연수생들 만이 아니라 우리도 앞날이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퇴임 등으로 생기는 교장 자리는 초빙교장으로 보임한다고 하니

교장들이 1차 임기가 끝나거나 이동을 원할 경우 갈 자리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진다.

4년 넘게 남은 사람은 그래도 1차 경력을 바탕으로 초빙교장에라도 도전할 수 있으나

1기가 끝나고 4년이 남지 않는 교장들은 초빙 교장으로 응모도 못하고 갈 자리도 줄어드니

앞으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학교 개혁을 벼르고 있던 사람들은 서울 여장학사 하이힐 사건을 계기로

교육계를 코너에 몰아넣고는 그로키 상태로 만든 뒤 만신창이가 된 교장들 앞에서 

연일 교육계 혁신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해찬이가 정년단축을 강행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교장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입장과 주장을 변명하고 대변할 사람도 조직도 여력도 없는 것 같아 너무 답답하다.

 

4.19 축사에서까지 대통령은 교육계 비리를 척결해야할 3대 당면 비리로 지목했다.

과연 우리 교장들이 그렇게 지탄 받을 사람들인지, 우리가 그렇게 몰염치하고 부패한 집단인지

나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평생을 2세 교육에 헌신해 온 우리를 이렇게 만신창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우리가 자초한 면도 있다.

조금도 허점을 보여서는 안되는데, 조금도 탐욕에 흔들리지 않았어야 하는데...

하지만 교육감 선거 제도가 조장한 구조적 부조리 사슬 속에서 일부 인사들이 저지른 잘못을

우리나라 전체 교장들의 잘못으로 과장하고 비난하는 이 상황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대구에서는 일부 학교 교장 선생이 앨범 때문에 적게는 20만원 많게는 백만원의 뇌물이나 향응을 받았다고 하여

줄줄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감사원 감사관들이 대거 투입되어 학교들을 저인망식으로 감사하고 있다. 

학교 앨범은 권당 3만원, 한 학년 학생수를 300명으로 볼 때 총액 9백 만 원밖에 안 된다.

여기서 교장이 먹는다면 얼마를 먹겠는가?

보도된 바로는 적게는 20만원의 향응을 받아 조사 받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저녁 한 그릇 같이 가볍게 해도 그 정도는 나올 것이다.

앨범 업무를 담당한 학년총무와 편집교사들, 학년부장과 나머지 담임들, 교장, 교감, 실장이 

앨범 제작 후 한 자리에 모여 1인당 10,000원짜리 대구탕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씩이면 밥값이 20만원 되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향응으로 본다면 분명 향응이지.

그것을 무슨 거창한 비리라도 되는 양 경찰이 개입하여 교장과 실장을 오라가라 하면서 조사를 하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으니 한 마디로 참담한 심정이다.

앨범 표지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찍혀 있는 데 그것을 두고 교장들이 돈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몰아부쳤다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업자가 단가를 맞출려고 중국제 표지를 썼다는데 그걸 학교장이 어떻게 알 수 있었단 말인가?

급식소에 식자재 입고시 학교장이 임장하여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는 것과 같은 넌센스 아닐까?

 

권력은 수용자의 의사와 관계 없이 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없게 만드는 힘이며

권위는 수용하는 사람이 지시나 가르침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라고 정의할 때

교육은 권위에서 시작되고 권위로  영위되고 권위로 성취된다.  

우리 국민들이 그리도 원하고 바라는 성공적 공교육 활동은 학교 현장에서 결판나며,

학교현장의 성패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학교장이다.

학교장의 권위가 무참히 유린되는 상황에서 과연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국공립학교 교장단모임, 지역별 교장협의회,  일반계 고등학교 교장협의회,

여교장회, 중등학교교장회, 초등학교교장회, 사립학교교장회 등 그 많은 교장단 모임들이

이런 상황에서 한 마디도 결집된 교장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