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북한산의 신록 속에서 통일교육 연수를 받고왔습니다. 통일연수원의 신록은 마치 녹색 바다 같습디다.
일정 중에 판문점 견학이 있었습니다. 임진강을 따라 판문점에 다다르는 동안 차창을 스치는 남북의 산하가 판연하게 달랐습니다. 신록으로 곱게 단장한 남녘의 산 속살을 드러낸 채 황폐한 북녘의 붉은 산
용천 폭발 사건으로 다친 사람들이 치료약이 없어 신음하며 죽어가는데도 우리 의료진의 방북이나 육로를 통한 신속한 지원조차 수용할 수 없는 북한의 현실이 바로 그 붉은 산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싣고 가던 평화의 다리를 건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판문점으로 들어갔더니 아아 그 곳에도 봄은 와 있었습니다.
저는 판문점을 세번째 들어 갔습니다. 첫번째 갔을 때는 도끼만행 사건과 살벌한 남북관계로 인하여 공동경비구역(JSA)에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아니 그 이전에 민통선과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는 것 만으로도 발끝이 간질간질하고 머리끝이 쭈뼛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남북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대화가 진척되어 해빙 무드가 무르익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판문점은 우리를 주눅들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세번째 방문인 이번에 느낀 판문점은 아직도 분단의 현장이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공동경비구역내 주차장을 가득 메운 관광버스와 음식점에 가득찬 관광객, 그리고 그들이 토해내는 웃음 소리 그래요. 이번에 본 판문점은 더 이상 소름을 돋게만드는 공포의 장이 아니었습니다. 엄연한 분단의 현장이지만 남과북의 화합과 통일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장, 남과 북이 하나되어 남북 산하가 다같이 녹엽으로 덮힐 그런 날이 곧 올 것임을 예감케하는 장이었습니다.
판문점엔 분명 봄이 와 있었습니다. 북녘 산하는 아직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붉은 산을 뒤덮을 풍성한 녹색에너지를 지닌 남녘의 봄기운이 이미 그곳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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