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물러나 자유인이 되었다. 신분변동과 관련된 몇 가지 일들을 하는 동안 9월이 그냥 가버렸다. 퇴임식에 왔던 울진 제자들의 성화로 9월 끝자락인 27일과 28일 양일간 울진을 다녀왔다. 퇴임식 이전부터 전화로 날짜를 정하고 채근해온 제자들의 뜻에 따라 안사람과 함께 올라갔다. 21년 이상된 양주를 꼭 가지고와야 한다는 노호승의 급박 때문에 집에 있는 제일 좋은 양주를 두 병 가지고 갔다. 한 병은 박사학위 논문지도 교수이셨던 백종억 교수님이 정년 퇴임을 축하한다며 보내주신 것이고 또 한 병은 지난 1월 중국을 다녀오면서 교육감님께 드릴 요량으로 사가지고 왔으나 여의치 않아 보관해두었던 것이다. 술을 챙기며 함께 가는 안사람에게 씩 웃으며 했던 말이 '각물유주(各物有主)!'였다. 모든 게 다 주인이 따로 있는 법!
사대를 갓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아 근무했던 곳이요, 우리 부부가 만나 첫 아이까지 얻은 곳이라 울진은 항상 고향 같은 곳이다. 처음 발령 받아서 갈 때는 대구를 떠난 버스가 경주, 포항, 강구, 영덕을 경유하여 울진으로 갔다. 가는 정류소마다 몇 십분씩 기다리며 손님을 태워 가지고 올라갔다. 그렇게 가니 대구에서 울진까지 꼬박 다섯 시간이 더 걸렸다. 그때 울진은 참 먼 곳이었다. 그러다가 무정차라는 게 생겼다. 세 시간 반이면 울진-대구 사이를 주파했다.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오가던 그 시절, 대구에서 울진으로 올라갈 때면 늘 망양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올라갔다. 말이 휴게소지 절벽 위에서 탁트인 바다를 조망하는 곳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망양휴게소가 지금은 멋진 전망대와 먹고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을 제대로 갖춘 일급 휴게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노호승이가 올 때까지 바다를 구경하고 차를 마시며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맘껏 즐겼다.
배달 마치고 오는 길이라며 트럭을 몰고 호승이가 왔다. 차를 한 잔 하고는 바로 호승이네 밤나무 산으로 직행했다. 주워서 주기는 어려우니 일찍 올라와서 밤을 주우라고 했기 때문이다. 온 산이 거대한 밤나무들로 꽉 차 있었다. 산에는 곳곳에 굵은 밤들이 널려있었다. 그냥 주워넣으면 되었다. 줍는 중에도 연신 툭 툭 밤이 떨어졌다. 잠깐 주웠는데 두 망이나 주웠다. 잠깐이라고 했지만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줍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허리가 너무 아팠다. 호승이가 전날 주워놓은 것이라며 한 망을 내차에 먼저 실어준 것까지 세 망이나 되었다.
알밤줍기를 마치고 성류굴 건너 운동장을 방문했다. 축구장에는 전국 고교생들의 축구시합이 열리고 있었고 테니스코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울진에 들어와 곧장 시장으로 갔다. 시장 한켠에 있는 호승이 부모님의 형제건어물 상회에 들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호승이 냉동창고와 집들을 보고 연호정 뒤 울진호텔로 갔다. 아이들은 연호정이 잘 내려다 보이는 7층에 방을 잡아두었다. 샤워를 하고 내려오니 남상천이와 임원규가 왔다. 함께 죽변에 잡아둔 식당으로 갔다.
허름한 음식점이었지만 울진토박이들이 선택한 음식점이라 음식이 맛있고 정갈했다. 주메뉴는 뱀장어요리였다. 장어를 안주로 주인장의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 양주를 두 병 모두 소진했다. 호승이 부부, 상천이, 원규, 우리 부부에 임찬욱이 부부가 합류했다. 오면서 울진성류굴 앞 체육공원 테니스 코트에서 찬욱이 부부를 만났는데 저녁에 죽변까지 달려왔다. 울진중 부임 2년차에 2학년 2반 담임을 했는데 그때 우리반 실장이 테니스 선수였던 임찬욱이었다. 안사람은 울진에서 교직에 있는 교육가족이란다. 나올 때 음식대를 찬욱이가 부담했다.
죽변에서 울진으로 돌아와 연지리 바닷가 원규 집으로 갔다. 원규집엔 친구들이 자주 모여 울진 발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라 돌아가는 일을 이야기도 하며 개인적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도 하는 성소 같았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잔 더 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 불어오는 해풍을 즐기며 만나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들과 해변에서 즐기는 주석은 참으로 즐거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자리를 파하고 울진호텔로 돌아와 누워잤다. 자고 일어나니 술을 많이 마시고 잤는데도 속이 개운했다. 좋은 술을, 좋은 안주로, 좋은 사람들과 마시고, 잠자리가 편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을 보니 연호와 연호정 송림, 그리고 울진 전경이 상쾌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오고 아침을 먹으러 죽변으로 갔다. 울진에서 제일 물곰 요리를 잘 하는 집이라며 안내해 간 식당에서 물곰탕을 들었다. 술먹은 다음날 아침 물곰탕은 최고 의 요리였다.
조식 후 다시 울진으로 들어와 연지리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해풍을 맞으며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원규가 배를 준비하는 동안 정자에 올랐다. 정자에 앉으니 멋진 해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진은 어딜 가도 정말로 멋진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눈에 들어오는 바다 속 작은 돌섬과 소나무 풍경이 바로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동해안 모습 같았다.
우리가 선경을 즐기고 있는 동안 선주인 임원규는 낚시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남상천 회장, 노호승이 안사람과 딸 윤선이가 도착하고 드디어 출항
바다 가운데 배를 고정하고 낚시를 시작했다. 가자미는 바닥에 서식하기 때문에 낚시를 바닥까지 내려 먹이로 유인해야 한다는 임선장의 지시대로 낚시를 내리고 손을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고기를 기다렸다. 안사람이 제일 먼저 소리를 질렀다. 지느러미가 멋진 제법 큼지막한 고기 두 마리가 함께 올라왔다.
이어서 임선장이 가자미를 잡아 올렸다. 그 이후 여기 저기서 가자미를 낚아올렸다. 하지만 임선장이 단연 일등이었다. 손 느낌으로 들어올린다는데 나는 그냥 올리다 보면 잡혀 올라오기도 하고 헛손질 하기도 하고 했다. 바다 한 가운데 배를 세우고 낚시로 가자미를 건져올리는 이 즐거움을 제자들 아니었다면 어찌 경험할 수 있었으랴. 참 멋진 경험이었다.
남상천 회장은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곤하는 데 오늘도 초보 낚시꾼들이 고기잡이를 할 수 있도록 미끼를 끼워주고 잡힌 고기를 빼주느라 바빴다.
호승이 안사람도 커다란 가자미를 낚아올리고는 탄성을 질렀다. 호승이 안사람은 오늘 배멀미로 고생을 했다.
오늘 낚시를 가장 즐긴 사람은 바로 호승이 딸래미였다. 밝고 환한 미소와 재잘거림으로 어른들과 어울리는 딸래미 윤선이 덕분에 모두가 더욱 행복한 하루였다.
낚시를 마치고 귀항하여 임선장 집에서 바로 회를 쳐 잔치를 벌렸다. 시내 횟집에서라면 몇 십만원어치는 족히 될, 그런 돈을 내고도 이렇게 싱싱한 자연산은 결코 먹을 수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식단이었다. 함께 한 호승이 딸래미가 하도 밝고 이뻐서 자리는 더욱 빛이 났다.
매운탕까지 끓여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1박 2일 간의 울진 여행을 마무리 했다.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함께 해 준 제자들이 내겐 너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대구로 귀환하면서 성류굴 건너 수곡 마을에 있는 조선조 최고의 지관 격암 남사고 (1509~1571)의 유적지를 찾았다. 내가 어렸을 때 학식으로 이름이 높았던 집안 어른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어른께서는 남사고의 고사를 이야기하시며 '각물유주니 삶을 살아가면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그때 그 어른이 들려주신 남사고 관련 고사가 '구천십장(九遷十葬) 남사고(南師古)야 비룡상천(飛龍上天)만 여기지 마라. 고사괘수(枯蛇掛樹) 그 아니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지관이라도 연이 없으면 천하의 명당은 가질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게 다 각각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니 헛된 욕심 부리지 말고 안분지족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내가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헛된 욕심 내지 않고 내 스스로 열심히 살아오도록 이끌어 준 귀한 가르침이었다.
젊은 날 울진에 몇 년을 살았는데도 울진이 남사고 선생 고향인줄을 알지 못했었다. 안내판을 따라 들어간 격암선생 유적지는 울진군이 많은 돈을 들여 관광지로 잘 조성해 두었는데 손님은 우리 부부 외에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격암 선생 생가터는 나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천하의 명당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서니 그냥 마음이 편안해졌다. 성류굴 건너 골짝 속에 이런 명소가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사방이 아늑한 산으로 둘러싸이고 왕피천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는 정말로 아늑한 곳이었다.
남사고 선생 유적지 탐방을 끝으로 퇴임기념 울진 여행은 막을 내렸다. 정말 즐겁고 행복한 1박 2일의 여정이었다. 훌륭한 선생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기 보다 좋은 제자들이 좋은 선생을 만든다는 말이 실감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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