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담당 장학사가 병원학교교장선생님께서 오찬을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기에 다른 약속들을 밀치고 약속을 잡았다. 얼마 전 경북대학교병원 로비에서 병원학교 학생들의 작품전시회 및 성금모금을 위한 바자회가 열렸을 때 처음 만났던 병원학교 명예교장 이건수 교수님과 병원학교 겸무교장 동인초 김근배 교장선생님이 오신다고 했다. 경북대 병원이나 우리 청과는 멀리 떨어진 두류광장 근처에 자리를 잡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건수 교수님의 20년 단골집이라고 했다.
이건수 교수님은 전시회와 바자회 때 이미 느꼈지만 오찬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느낌 이상으로 생각하는 게 맑고 따뜻한 분이었다. 나까지 절로 진솔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따뜻하고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된 것 아닐까.
이건수 교수님과 연을 맺게 된 경북대학교병원학교 환아들의 작품전시회 및 바자회는 12월 4일 경북대병원에서 열렸다. 그날 9시 30분 담당장학사의 안내를 받으며 경북대학교 병원장실로 갔다. 병원장실에는 경북대학교병원 백운이 원장님, 병원학교장인 인근 동인초 김근배 교장님, 명예교장인 경북대 의대 이건수 교수님 등 병원학교 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하루 종일 치료만 받던 아이들이 병원학교 운영으로 치료와 함께 공부하고 어울리면서 훨씬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우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감사 받아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차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10시 조금 전에 행사장으로 향했다. 많은 환아들과 학부모들이 모처럼의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행사장이 매우 붐볐다. 행사를 축하하면서 병원관계자와 병원학교 교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환아들에게 씩씩하게 병을 이기고 많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로 하루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의 격려 인사를 해주었다.
병원학교 작품 전시회 및 바자회 행사를 위해 우리 특수교육센터 선생님들이 며칠 동안 열심히 준비를 했다. 판매하거나 대접하기 위해 손수 쿠키를 만들어 굽기도 하고 천연 염색 스카프를 제작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열리는 환아들의 작품전시회라 학생과 학부모들은 더 열심히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바자회 물품과 학생들의 작품이 행사장에 그득했다. 풍성한 전시회요 바자회였다. 나는 천연 염색 스카프 몇 개를 사서 병원학교 관계자들께 선물했다.
이건수 명예교장선생님께도 사드렸는데 목에 걸쳤다가 정작 사진을 찍을 때는 벗어 두었다. 내겐 동인초 교감선생님께서 하나를 목에 걸어주셨다.
작품전시회에 출품된 환아들의 작품에는 곳곳에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는 결의와 다짐 그리고 바램이 각인되어 있었다. 나도 희망나무에 환아들의 쾌유를 비는 소망을 적어서 매달았다. 아이들이 병마를 이기고 하루 빨리 친구들이 기다리는 학교로 돌아 갈 수 있도록.
환아들의 글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런 내용들이 많았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만한 나이의 아이들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관조가 있었다.
중3 학생이 쓴 '달팽이'라는 시를 보자.
달팽이
모든 게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고가 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가는 건 멍청하다 생각했다.
빨리 가야 했고 또 일등이어야 했다.
누구든 날 부러워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새가 되어 날아가길 바랐다.
그러던 내가 날개가 꺾여 날아가지 못하게 됐을 때
문득 느리게 가던 달팽이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 느렸다. 큰 걸림돌은 피해갔고 처음엔 한심했다.
그러다 문득 날개가 꺾여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내가 보였다.
어쩌면 달팽이는 나보다 훨씬 용감할지도 모른다.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해 겁내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도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빠르지 않다. 그렇다고 최선이 아닌 것은 아니다.
느리다. 그렇다고 최고가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날개가 꺾인 지금 이제 그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걸 느낀다.
모든 게 빠르고 최고이기를 원했던 내가
가장 나답게 느린 달팽이가 되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환아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우정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병원학교를 운영해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우리 아이들이 하루 빨리 쾌유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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