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여고(1993-1996)

1993년 1학년 2반 제자들

사도마루 2013. 4. 19. 21:32

 

1993년 3월 1일자로 대구공고 산업체에서 경덕여고로 전근을 왔다. 대구공고에 있는 4년 동안 저녁 시간에 2부 학생들과 산업체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낮 시간에 박사과정도 다니고 과학고등학교 1기생부터 6기생까지 아이들도 출강하여 가르쳤지만 경덕여고에 와서는 아이들 교육에만 흠뻑 빠졌다.

 

경덕여고 첫해에 만난 우리 아이들은 하나 같이 이뻤다. 교직 생활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보람이었던 정말로 신나는 시기였다. 그때 만난 제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1번 강민정 : 죽전여중. 친구들의 농담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넉넉한 학생이었다. 수학여행을 갔을 때 평소의 조용하고 얌전하던 모습과는 달리 격렬한 춤사위로  수학여행의 하일라이트 '경덕의 밤'을 뜨겁게 달궈놓았다.

홍익대학 산업디자인과를 가고싶어 했다. 미대 진학을 위해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학교 성적이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멋진 놈이었다.

 

 

2번 고정자 :  경혜여중. 재치있고 밝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잘 어울리는 학생으로 피아노 연주를 특기이자 취미라고 적은 학생이었다. 방송반 활동을 열심히 하여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요즘 같으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방송 쪽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학생이었다.

 

 

3번 권미정 : 서부여중.  3월 초 실장 선거에 출마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차분하고 조리있게 자신의 주장을 잘 표현하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입학 초 진로 조사에서 경대사대 진학을 희망했다. 경대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국어선생님으로 성장했다. 내가 함지고 교장으로 있을 때 우리학교 국어교사로서 신설 함지고의 도서관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

 

 

4번 권상임 : 경화여중. 차분하고 친화력이 있으며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을 하는 상담자로서 역할을 곧잘했다. 아버지가 권기백 교장 선생님이다. 서울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여 광고업이나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졸업 후 계대 미국학과로 진학했다.     

 

 

5번 기세란 : 서부여중. 피아노 연주와 운동을 좋아하고 서예 솜씨가 수준급인 다재다능한 학생이었다. 실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자신감 넘치는 말과 논리적 언변이 인상적이었다.

냉천으로 봄소풍을 갔는데 소풍지에서 아이들이 바이킹을 탔다. 다른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데 세란이는 한치의 동요도 없이 고개를 들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의 그 당당함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늘 침착하고 당당하며 긍적적이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2학년 올라가서 실장이 되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공부 안하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중간고사 시험지를 거의 백지로 내는 바람에 나중에 대학 진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1학년 때 희망조사서에는 서울대 법대 진학이라고 당당히 적었었는데... 

 

 

6번 김영정 : 서부여중.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어 한 당찬 학생으로 태권도 유단자 였다. 운동만이 아니라 공부도 진지하게 열심히 했지만 원하는 만큼 잘 되지 않아 속상해 했었지.

 

 

7번 김정희 : 서부여중. 비산성당에 나가는 가톨릭 신자로 차분하고 과묵한 여학생이었다.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국민윤리학과로 진학했는데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8번 김지혜 : 중리여중. 책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으로 늘 말없이 조용히 동참하는 스타일이라 밖으로 들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여성스러운 학생이었다. 회계학과로 진학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9번 김춘옥 : 서부여중. 동산교회를 나가는 크리스쳔으로 차분한 가운데서도 적극적으로 학급일에 동참했다. 

 

10번 김해민 : 서부여중. 멀리 북구 태전동에서 경덕까지 먼 통학길을 달려오면서도 학급일에 적극적이었던 학생으로 겨울 방학 중에는 스파르타 학원에 들어가 죽어라고 공부를 하고 나온 노력파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11번 김현주 : 우표수집과 수영을 좋아하던 아이. 늘 얼굴 표정에 은은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어했었는데 지금은 무얼하고 있을까?

 

12번 김혜경 : 임실 실장 체제였던 학년 초기에 실시된 실장선거에서 아이들의 이상한  표심 때문에 실장으로 당선되었으나 본인이 사양하여 재선거를 치뤄 이미정이가 실장이 되게 했다.

 

13번 김효정 :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나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했다.  

 

14번 류선희 : 솔직담백하고 거칠것 없는 성격으로 봄소풍 때 사회를 맡아 진가를 발휘했다. 학급청소나 환경구성에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고 허은정이와 함께 금오공대 토목공학과로 진학했는데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15번 민재순 : 운동선수로 운동에 몰입

 

16번 박경미 : 말수가 적고 신중한 석역으로 학급 일에 협조적이었음

 

17번. 박은희 : 학년 초 학급환경정리를 할 때 밤늦도록 포도를 만들고 벽에 페인트칠을 했음. 취미가 종이접기였지.

 

18번 박정주 : 환경정리시 칠을 하는 등 학급 일에 적극 동참. 내일교회 성가대원.

 

19번 박정희 : 학급환경 구성시 달력을 만들고 학우들의 생일을 모두가 알 수 있게 함.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소하여 수련을 함. 사회학과로 진학을 했었는데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20번 박희정 : 과묵 신중하면서도 학급 일에 협조적이었다. 교대로 진학했는데 지금 어느 학교에 있을까 궁금하다.

 

21번 배은정 : 연세가 많은 신문선 선생님께 구수한 사연의 편지를 드려 노교사를 아주 기쁘게 해주 었다. 테니스와 시짓기를 취미라고 했다.

 

22번 백유리 : 자기주장이 분명하고, 밝고 명랑하며, 환경정리를 위해 교실에 칠을 하고  학급용 시계를 희사하였으며, 학급문고용 책장까지 지원했다. 경대 동양어문학부로 진학을 했었다.    

 

23번 백지혜 : 학급 시사란 담당. 학교 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아 걱정하며 시골 전학까지 고려하더니 정작 대학은 계대 관광경영학과인가를 갔었지.

 

24번 서영아 : 사설을 스크랩하여 계속 공부하는 등 학습에 의욕을 보였었지.

 

25번 손경화 : 밝고 명랑하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진중한 학생이었다. 오빠가 워낙 공부를 잘 해 항상 상대적 부진감이 많았었지.

 

26번 손주령 : 밝고 명랑하며 적극적인 생활자세로 자부심이 강하고 상승욕구도 강한 당찬 여학생이었다. 1학년 때는 이화여대 약대를 가고 싶어했었는데 3학년 때는 희망이 바뀌어 중앙대학교 의류학과인지로 진학했었지 아마. 

 

27번 이미정 : 임시 실장이었던 장희진이가 1차 선거에서 떨어지고 김혜경이가 실장이 되었지만 못하겠다고 물러서는 바람에 2차 선거가 치뤄지고 이때 당선된 실장이 이미정이었다. 고1 어린 나이에도 이지적이고 냉철한 자세가 단연 돋보이는 학생이었다. 1학년 때 희망은 법관이나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경대 전자공학과로 진학을 했다.  

 

28번 이상미 : 이빨 교정기를 차고 있으면서도 늘 밝고 환하게 웃으면서 아이들을 넉넉하게 품어안는 마음 씀씀이로 널리 아이들의 신망과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열심히 노력하여 성적이 잘 나오는데도 부모님의 더 큰 기대에 압박감을 느껴 힘들어 하기도 했었다. 공부만이 아니라 RCY 캠프 같은 데도 참가하고 활동도 하는 아이였지. 경대 경제학과로 진학했다.

 

29번 이상옥 : 말수가 적으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잘 챙기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던 학생이었다. RCY 캠프에도 참가했었다.

 

30번 이수정 : 학기초에 학급환경 정리를 하는 데 쓸 포도를 열심히 만들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사람들은 형제들 간에 티격태격 싸우면서 성숙해 가는 것인데 두 살 위 언니와 자주 다툰다고 했다. 두 살 아래 동생이 언니와 다툰다는 것은 동생이 그만큼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체적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학급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협동적이며 학습 태도도 진지했다. 계대 화학과인가로 진학했다.

 

31번 이영금 : 음악감상을 취미라고 하며 조용히 학급생활을 하던 학생이다.  영금이는 공부로 사람이 판단되는 사회 풍조를 비판하며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관계 확대를 염원했다.  부모님께서는 도자기 판매업을 하셨다.

 

32번 이영아 : 단아한 얼굴. 조용한 성품.

 

33번 이정화 : 차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늘 은은한 미소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하는 학생이었다. 다음해인 1994년 스승의 날을 맞아 백지혜랑 둘이서 자그마한 선물상자를 들고 왔었지. 거창이 고향인 아버지는 간혹 사냥을 가신다고 했었다.

 

34번 이정희 : 평소 별 말없이 학교일에 동참했다. 급우들 간에 마니또를 정해 자신을 밝히지 않고 비밀리에 편지로 서로를 격려하곤 했었는데 자기는 자기 마니또에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데 자기 마니또는 글을 주지 않아 속상해 했었지.

 

35번 이지윤 : 학교 바로 앞 삼익뉴타운에 사는 아이로 크고 둥근 얼굴에 환한 미소가 일품이었다. 그 크고 환한 미소, 건강한 표정으로  온 교실을 환하게 만드는 밝고 포근한 아이였다. 학년 초에 환경정리를 할 때 밤 늦게까지 동참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려움 모르고 자란 아이처럼 티없이 밝고 다른 친구들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36번 이찬영 : 침착하고 온순한 심성으로 학급환경 구성시 벽면 페인트를 열심히 지우고 있었다. 

 

37번 이혜정 : 말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돋보이는 학생이었다. 놀 때는 확실히 놀고 공부할 때는 열심히 했다. 봄소풍 갔을 때 유선희와 함께 급우들 앞에 나가 사회자로서 오락을 리드했다.  

 

38번 장은주 : 걸스카웃 활동을 하고 환경정리 때 칠을 하는 등 학급일에 동참했으나 주로 조용히 관망하는 스타일이었다.

 

39번 장희진 : 입학성적도 최고였고 외모도 출중했으며 임시실장을 맡아 진지하고 차분하게 학급일도 잘 처리했지만 임시실장을 맡았다가 본 실장선거에서는 탈락했다. 이쁘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은따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학생이었다.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었다고 하나 학교에서는 음악 관련 활동을 별로 보지 못했다. 과민성 대장증상으로 많이 아파해서 집에까지 급히 데리고 간 적도 있곤 했는데 서울대 간호학교로 진학을 했다. 다다음 해에 서울대 의대를 다시 들어갔다.   

 

40번 정선영 :  한 해 휴학을 마치고 복귀하여 후배들과 한 학년이 되었는데도 급우들과 원만히 잘 어울렸다. 학급 커텐을 손수 세탁해 오는 등 학급일에도 협조적이었다. 그해 스승의 날에는 과자를 한보따리 싸와서 급우들과 나누며 학급에서 오락판을 벌렸었지.

 

41번 정영숙 : 진지한 수업자세가 구도자 같은 학생이었다. 친구들로부터 '엄숙 그 자체'란 별명으로 불렸다. 행정학과 쪽으로 진학하여 고시를 공부해 행정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 정작 대학은 경대 컴퓨터공학과인가로 진학을 했다. 

 

42번 정위경 : 가녀린 몸매에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다.

 

43번 조현주 : 호기심 어린 눈빛과 도도한 자세가 기억에 남는 학생이었다. 약사나 교사가 되고싶다고 했었는데 경영학과인가로 진학했다.

 

44번 주현정 : 말수가 적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학생이었다. 약사가 되고싶어했었는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45번 차민경 : 밝고 이지적이며 몸가짐이 반듯한 언제나 당차고 도전적이었던 방송반 학생이었다.  내가 시교육청 장학사 시절 세란이와 청에까지 함께 왔었다.  서울로 올라갔다는 소식까지만 왔다. 이 글을 정리하며 혹시나 해서 옛날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받으셨다. 서울 모 대학에 교수로 있다고 하셨다.

 

46번 최미혜 : 맑고 밝은 표정, 진지한 생활 자세가 돋보이는 학생이었다. 관광경영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차가 드물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관광이 전국민의 일상생활이  되었으니 그 분야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기대된다.          

 

47번 최미화 : 학급일지 및 출석통계를 처리하는 학급의 일꾼이었다. 직설적이고 화통한 아이였는데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48번 최해은 : 학년 초에 육성회 임원을 구성하는데 다들 난색을 표해 담임으로서 어려웠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게 해은이였다. 미술학원에 나가며 미대 쪽 진학을 꿈꾸었었는데 그 이후 소식은 접하지 못햇다. 박정주, 고정자와 친히 지냈었지.

 

49번 한경숙 : 씩씩한 부반장이었다.  대구교육연수원 장학사로 있을 때 신임교사 연수를 시켰는데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이후 이웃학교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50번 허은정 :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띄고 협조적이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환경정리할 때 학생 책사에 페인트칠을 하며 동참했다. 늘 도서관에 남아 열심히 공부를 하곤 했는데 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었지.  

 

 

 

 

새학년도가 시작되고 교실환경을 조성하면서 우리는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 아버지 헌 옷까지 걸치고 벽에 페인트까지 칠해가며 모두가 합심하여 교실환경을 꾸미면서 우리는 진정한 하나가 되었다.

 

 

 

 

 

 

 

 

컵라면 사다 먹어가면서 밤늦게까지 환경정리를 하던 이 열정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던 나는 항상 학교에서 제일 뒤에 퇴근하는 선생이었다. 교재연구, 논문준비 때문에 맨날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나와 함께 늦도록 학교에 남아 자기스스로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모아 '자강불식반(自强不息班)을 결성했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런 단합된 우리반의 열기는 환경심사, 합창대회, 체육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93년 4월 1일. 냉천으로 봄소풍을 나갔다. 첫 단체 나들이었다.

 

 

 

 

다른 반 아이들과도 사진을 찍었다.

 

 

 

나는 우리반 학생들이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를 모아 책자를 만들고

돌아가면서 그 노래를 함께 부르게 하면서 꿈많은 여고시절을 함께 하게 만들었다.

 

 

 

 

 

 

93년 10월에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93년에도 아이들과 친해지다가 갈등이 생기고 다시 화해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에게 쓴 편지가 남아 있기에 넣어본다.

 

 

 

2년 뒤 이 아이들이 졸업식을 하던날 졸업을 축하하며 사진들을 찍었다.

 

 

 

한경숙이 이름이 동생 경재로 적혀버렸다. 경재는 경숙이의 두 살 아래 동생으로 1995년 내 반 학생이었다.

 

 

 

장희진이가 서울대에 합격하여 장학금을 받는 모습

 

 

 

졸업식장에서 장학금을 받은 서울대 합격생들

 

 

 

 

백재은이는 우리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날 무척 따르던 모범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