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테푸이아 지열지대 구경 후 오클랜드로 이동했다. 로토루아에서 오클랜드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먼 길이었다.
오는 중간 작은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왔다. 그곳에는 대구가 고향인 중년 아저씨의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가이더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경상도 아저씨는 대구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자랐는데 이 먼 뉴질랜드까지 와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고향 사람이라며 반기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물건을 사려고 했으나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렇게 가게가 초라했다. 그래도 나는 뉴질랜드 상징인 키위 모양의 토산품을 하나 사고 안사람은쵸클릿을 있는 대로 샀다. 물론 쵸콜릿을 있는 대로 샀다고 해도 몇 개 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보게 된 녹색의 초원은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녹색이 가진 본연의 그 싱그러움과 편안함까지 둔감하게 만들 만큼 끝없이 이어졌고 간간이 나타나는 소떼들이 그나마 다른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해거름녘에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 올 때 처음 발을 딛은 곳이지만 공항에서 바로 와이토모로 직행했기 때문에 구경을 할 기회가 없었다. 오클랜드는 북섬 제1의 대도시 답게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스카이 타워와 고층 건물들이 그려내는 화려한 스카이 라인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세계 제일의 요트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항구에는 요트들이 줄줄이 정박해 있다. 오클랜드항에는 작은 요트들만이 아니라 거대한 크루즈선도 함께 정박해 있어 오클랜드항이 큰 항구임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인구가 적은 나라라 도시 경역은 그렇게 넓지 않아 보인다.
오클랜드에 들어와서는 곧장 도착 즉시 미션 베이(Mission Bay)에 위치한 Michael Joshep Savage Memorial Park를 구경했다. 새비지 전 총리가 묻힌 곳으로 오클랜드의 랜드마크 스카이타워와 다운타운이 보이고 아름다운 전설을 가진 섬 랑이토토섬(Rangitoto Island)이 가까운 해변 공원이다.
공원 입구엔 랑이토토섬과 쪽빛 바다에 어울리는 해마상 분수가 있고 기념탑 앞 광장은 연못과 꽃밭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이 마음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서 해변으로 내려 가자 부드러운 모래 백사장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해변 모래밭엔 누군가가 모래와 조개껍질로 비키니 차림의 여인상을 만들어 두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여인상 머리 부분에 바다새 한 마리가 내려 앉아 여인의 가슴을 탐하면서 해변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바닷가 모래 위에 안사람이 아들과 며늘아기의 이름을 적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클랜드 바닷가에 새긴 두 사람의 이름과 사랑 마크는 신혼인 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모정의 표현이리라.
어린왕자 속 보아뱀처럼 보이는 랑이토토섬을 배경으로 오클랜드 미션베이 해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하늘, 구름, 섬, 바다, 백사장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한여름이라고는 하나 바람이 서늘한 해변에서 풍만한 비키니 차림의 남국 여인이 먼 곳에서 온 길손의 눈길을 즐겁게 해주었다. 밝고 건강한 미소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는 이의 기분까지 즐겁게 만든다.
미션 베이 해변 백사장을 즐기고는 스카이 타워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들어왔다.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타워는 크고 우람했다. 높이 328미터로 남반구에서 제일 높은 타워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번지점프의 발상국답게 이 탑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스카이 번지 점프대가 있고 전망대 바깥 차양 부분을 걷는 스카이 워크 360이 있다.
타워 바로 밑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일식집이 있는 데 그곳에서 오클랜드 특식으로 장어요리를 들었다. 밥과 김치가 함께 나와 한국에서의 식사처럼 편안하게 들었다. 이제 어디에 가거나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는 일은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그만큼 전세계 곳곳에 우리 교민들이 나가서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이젠 온 지구촌이 우리들의 무대다.
저녁을 먹고는 숙소인 오클랜드 로즈 파크 호텔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밖을 보니 오클랜드 대학 건물이 보인다. 뉴질랜드는 만5세가 되는 생일날 아침에 입학하여 학생이 되는데 5월 이전 생은 0학년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초등학생들은 교재 없이 교육을 받으며 여유있게 공부를 한다. 초중고 학생들은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학점제로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뉴질랜드에는 8개 대학이 있는데 공부를 매우 빡시게 시킨다. 대학을 들어가기는 쉽지만 졸업하기는 쉽지 않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의대는 뉴질랜드에 2개가 있는데 적성시험을 통해서 학생을 선발한다. 뉴질랜드의 의사는 연 7만불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학생들은 학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시키는 것은 모두 국가가 부담한다. 학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 수당까지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다니 낙원이 따로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선진 복지 시스템을 시작한 나라답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이런 시스템을 운영한다고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넓고 광활한 땅 덩어리에 한 줌밖에 안 되는 국민들이니 가능한 일 아닐까.
학생들에게 다양한 복지혜택이 마련되어 부모의 도움 없이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 아이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모님들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그에 비례하여 효심도 부족하다고 한다. 18세가 되면 독립해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보다 독립적이고 소원하다. 결과적으로 효심은 적어지고 애국심은 높아지는 국가 운영 시스템이다.
노인들에 대한 복지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노인들은 고독고를 겪고 있다. 나이들어서는 자식들과 함께 살며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것이 낙인데 그럴 수 없으니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넓은 국토에 적은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들어 운전을 할 수 없게 되면 양로원 같은 시설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하기야 앞으로는 우리나라 노인들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그래도 우리나라 노인들이 그런 면에서는 조금 나은 것 같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이 복지 시스템의 동력은 바로 세금인 만큼 뉴질랜드에서는 세금을 포탈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된다. 우리도 복지 혜택을 확대하려면 반드시 성실 납세가 일상화 되도록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고소득 법조인이나 의료진이 오히려 당당하게 잘 살아가는 그런 풍토 위에서는 복지가 제대로 정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버스로 10여분 이동하자 숙소인 오클랜드 로즈 파크 호텔(Aukland Rose Park Hotel)에 도착했다. 아주 정갈하고 품격 있는 호텔이다. 바로 앞에는 5,000종이나 되는 장미가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낸다는 파넬 로즈 가든(Parnell Rose Garden)이 있고 뉴질랜드의 6.25 참전을 기념해 가평에서 가져온 흙을 넣고 세운 한국전쟁 참전 불망비가 있어 우리들에겐 더욱 유의미한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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