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쾨로르다아라르를 넘어가면서 가이드는 터키 민요 나의 서기관(KATIBIM)을 함께 즐기도록 유도했다. 6.25 참전 용사들을 통해 이미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어려서 들었던 노래였지만 오랜만에 다들 다시 배워 부르고 또 불렀다.
1절
위스키다라 기데르켄 알드 다 비르 야무르 (반복)
[위스키다라 가는 길에 비가 내리네]
카티비민 세트레시 우준 에테이 차무르(반복)
[내 님의 긴 외투자락이 땅에 끌리네]
카팁 우이쿠 단 우얀무쉬 괴즐레리 마흐무르 (반복)
[내 님이 잠에서 덜깨어 눈이 감겼네]
(후렴) 카팁 베님 벤 카티빈 엘 네 카르쉬르
[우리 서로 사랑하는 데 누가 막으리]
카티비메 콜라르다 괴믈렉 네 귀젤 야라쉬르
[내 님의 깃 다린 셔츠도 너무 잘 어울리네]
2절
위스키다라 기데르켄 비르 멘딜 불둠 (반복)
[위스키다라 가는 길에 손수건을 놓았네]
멘디리민 이치네데 로쿰 돌둘둠 (반복)
[내 님을 위한 손수건에 사랑 담았네]
카티비미 아라리켄 야늠다 불둠 (반복)
[어느새 내 님이 바로 옆에 있네]
설경 속 고속도로를 달리며 터키민요를 배우다 보니 거대한 도시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높다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많이 늘었다. 곧 바다가 나타나고 거대한 화물선이 곳곳에 떠 있었다. 마르마라해 한쪽 귀퉁이 이즈미트만의 항구도시 이즈미트다.
한 시간 정도 더 달리니 차가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정체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 동서양의 접점. 무수히 그 이름을 들었던 국제도시 이스탄불 깊숙히 들어온 것이다. 정체는 아시아 쪽에서 유럽 쪽으로 넘어가는 보스포러스대교 를 건너려는 차량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 언덕 정상에는 수많은 방송탑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었고 그 아래 언덕에는 빌라형이나 아파트형의 주거공간이 발달해 있었다.
대교 가까이 해협쪽(왼쪽) 언덕에는 단아한 붉은 기와집들이 질서있게 늘어서 있었다. 방송탑이 있는 쪽(오른쪽) 보다 여유있는 사람들의 주거지로 보였다.
드디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러스대교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스탄불의 명소 보스포러스대교 중간이다. 이스탄불은 인구 약 1600만 명의 거대 도시로 터키 인구의 1/5이 살고 있다. 이스탄불은 세계 도시 역사상 최고의 고도이다. 비잔틴제국 1000년, 오스만제국 700년, 1700년의 수도였기에 외형에서부터 고도로서의 역사적 무게가 느껴졌다. 이스탄불 관광에 앞서 술탄 아흐멧 역사지구의 식당에서 닭고기 미트볼로 점심을 들었다. 함께 나온 빵은 공갈빵(?)이었다. 막 나왔을 때는 공처럼 크게 부풀어 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그만 폭삭 가라앉아 평평해졌다. 하지만 맛은 공갈(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