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린구유와 소금호수(투즈호)
2009. 1. 16(금) 카파도키아(3)
우치히사르의 동굴식당에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 우리 일행은 버스로 약 30분간 이동을 했다. 고대 교회건물 뒤쪽 좁은 통로를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데린구유 지하도시가 있었다. 이 일대에는 60여개의 지하도시가 구축되어 있는 데 그 중에서 데린구유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한다. 데린구유는 85미터 깊이로 만들어진 우물같은 수직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위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깊은 우물인데 실은 지하 도시의 통풍구 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주택 밑 지하실과 창고, 우물 등을 단순한 지하실이나 창고 등으로만 알았었는데 지역실태조사 과정에서 지하실이나 창고, 우물이 지하도시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데린구유에서는 오래전 히타이트 시대의 유물, 로마원정대의 유물 등이 발굴되어 오랜 세월 동안 주거지로 쓰여왔으며 기독교 시대 이전에 이미 로마인들이 정착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데린구유의 지하도시는 완전히 개미집 같은 지하도시였다. 수백년에 걸쳐 삶의 공간으로 조성된 지하왕국인 셈이다. 개미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우린 너네들 보다 훨씬 오래전에 아파트 주거 문화를 향유했었다고 한다는 데 우리 인간 역시 이미 수천년 전부터 지하 아파트 주거 공간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로마에 갔을 때 보았던 지하 도시 카다콤베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기독교가 박해를 받는 동안 지하도시 구축과 은둔이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발견된 유적을 보면 기독교 시대 이전에 이미 조성된 것이라고 하나 가이드의 설명처럼 기독교 박해로 지하도시 구축이 심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하도시는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했던 무렵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여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의 상당 기간까지 제정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은둔한 사람들이 조성한 것이다." 라는 코멘트처럼...
하얗게 눈 덮힌 산과 광활한 경작지만 보면 여느 농촌과 다를 게 별로 없는 곳이었지만 이 평야 가운데 오래된 교회 건물이 있고 그 건물 뒤켠에 협소한 구멍이 있었다. 한 때 4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거대한 지하도시 데린구유의 입구는 이렇게 은폐되어 있었다. 교회 근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이 있었다. 데린구유란 말은 바로 이 깊은 우물에서 유래했다.
협소한 입구를 통하여 지하로 진입하자 입구를 쉽게 봉쇄할 수 있는 맷돌처럼 생긴 돌대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맷돌문은 지하 통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유사시 적의 침입을 간단히 차단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조금 더 들어가자 통로는 넓어졌고 곳곳으로 이어지는 복잡 다기한 통로망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었는데 이곳은 교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이 지하 공간에서 약 4만명이 살았다니 이 지하공간의 규모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된다. 데린구유 외에도 마즈 하도시, 아즈굘 지하도시, 카이막클르 지하도시 등이 유명한데 데린구유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카이막클르는 8층의 아파트 형태로 구축되어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린구유는 지하도시에 공기를 공급하는 환풍구 역할을 한 깊은 우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하도시에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앙카라로 향했다. 땅 위에서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린 잘 모른다. 평생을 지하동굴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향유하는 이 신선한 공기가 무엇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앙카라를 향해 출발했다. 넓은 평원, 눈덮힌 산, 강과 호수를 지나 몇 시간을 쉼 없이 달렸다.
악사라이를 지나 얼마를 더 가자 내 눈에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아니라 터키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면서 염도가 사해보다 더 높은 투즈호(일명 금호수)라고 했다. 터키는 필요한 모든 소금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투즈호를 지나서도 계속 보이는 것은 끝없이 넓은 평야였다.
사람 사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원을 계속 달려 오늘의 목적지 앙카라에 도착했을 때는 오둠이 내린 오후 5시 45분이었다. 1시 20분쯤 출발했으니 네시간 반 가량 계속 달린셈이다. 부산에서 서울 사이 정도 되는 거리인 모양이다. 숙소는 찬카야 호텔이다. 저녁은 1층 레스토랑에서 닭고기 케밥으로 했다. 터키에서는 불로 요리한 것을 모두 케밥이라 한다고 했는데 점심 때 먹은 항아리 케밥은 수프였고, 저녁에 먹은 것은 꼬치였다.